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가디슈 전투 (문단 편집) === 지속되는 교전과 각종 사건사고들 === 걸프전에서 승리한 미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성과를 내는 파라 아이디드를 체포하고,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무장세력을 완전 해산시키기 위한 공격이 수시로 진행됐다. 이 공격의 주도자는 조너선 하우 제독이었다. 사실 조너선 하우 제독은 미국에 '''[[델타포스]] 1개 팀을 요청했다가 거절된 상황'''이었다. 클린턴은 여전히 떨떠름해했던 것이고, 이후의 활동은 사실 미국의 주도라기 보다는 조너선 하우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벌인 것이다. 우선 6월 17일, 무지하게 '''신사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우선 헬기에서 '경고방송'을 해서 민간인들의 대피를 유도한 다음에 프랑스, 모로코, 파키스탄 군이 아이디드의 측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뒤진 것이다. 당연히 어린이에게도 통할지 장담 못할 장난질이었고, UN군에게 망신만 더해줬을 뿐이었다. 이 장난에 대한 불만을 주도한 것이 UN군 사령관 세비크 비르 터키 장군과 미 육군의 토머스 몽고메리 장군이었다. 결국 이 주장대로 1993년 7월 12일, AH-1 코브라 등을 동원하여 은신처를 공격해서 무장 세력, 동조자 등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민간인을 대규모'''[* 아이디드 측은 '''여자와 아이 포함 73명 사망, 수백의 부상자'''로 발표했고, 미국은 '''남자 20명'''으로 발표했다. 적십자사의 발표는 54명 사망에 부상자 196명이었다.]로 죽인 건 덤이었다. 그리고 목표물을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민간인 오폭이 이어졌다. 파라 아이디드는 미군의 오폭을 선전해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며 덕분에 무장세력을 격파하고 치안을 확보해 평화를 유지한다는 다국적군, 특히 다국적군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미군의 이미지는 부정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 오폭으로 이전까지는 온건파로 존재하였던 '''반 아이디드 파 부족과 군벌들이 아이디드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소말리아인들을 살육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이 상황을 UN평화유지군과 아이디드의 대립이 아니라, 미국과 소말리아의 전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여론 변화로 인해서 이 상황을 취재하던 기자 4명이 소말리아 군중에게 살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도 이상주의자였던 조너선 하우는 아이디드를 국제법정에 세우는 것이 최상이라고 판단해서 미국 정부에 끊임없이 델타포스 파견 요청을 하고 있었고, 이게 거절되자 미친척하고 아이디드에게 25,000달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아이디드가 소속된 하브 지디르 부족은 '''현상금이 너무 적다'''라는 이유로 아이디드에 대한 모독이라고 판단해서 조너선 하우에게 1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서 조너선 하우를 엿먹였다. 8월 8일에는 험비가 원격통제지뢰에 피격돼 미군 헌병 4명이 사망하며, 2주 후인 8월 22일 똑같은 방법으로 7명이 부상당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단숨에 끝내버릴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